기술이 발전할수록 우리는 종종 인간의 손길이 사라질 것이라 우려한다. 그러나 역설적으로 기술 진보의 목표는 오히려 ‘사람을 얼마나 닮아갈 수 있는가’로 향하고 있다. 제면 기술의 진화·발전 또한 그렇다. 소면을 만드는 기계들은 장인의 손을 닮고자 발전해왔다. 장인이 날마다 반죽의 표정을 읽고 바람과 온도를 가늠하던 경험, 손끝으로 늘리고 두드리며 면의 결을 완성하던 기술을 어떻게 그대로 구현해 낼 것인가를 고민한 결과물이다. 결국 기술의 진정한 발전이란 인간의 섬세함을 이해하고 그것을 접목시키려는 노력의 결실이다. 소면 한 올에도 그런 이야기와 시간이 흐르고 있다.
기계로 빚는 장인의 기술

소면의 반죽은 그날의 온도와 습도에 민감하다. 조금만 건조해도 부러지고, 조금만 눅눅해도 흘러내린다.
소면을 반죽하는 기술이 얼마나 까다롭고 예민한 지 아는 사람만 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오랜 시간 쌓인 기술이 가장 필요한 순간이다.
현대의 제면 기술은 단순한 대량생산을 위한 과정이 아니다. 오히려 장인의 손끝에서부터 나오는 원리를 데이터와 알고리즘으로 재현해냄으로써 정밀하게 ‘좋은 소면’을 만들어내는 과정이다. 밀가루와 물을 섞는 반죽 공정부터가 그렇다. 면은 재료보다 물이 좌우한다고 한다. 물의 양과 반죽 시간, 숙성 온도와 습도는 모두 섬세하게 계산된다. 특히 가수율(加水率)은 소면의 운명을 결정짓는 시작점이다. 가수율이란 쉽게 말해서 물을 얼마나 넣고 반죽했는지 그 비율을 말한다. 가수율은 단 1%의 차이에도 반죽의 양태가 달라진다. 너무 촉촉하면 늘이는 동안 처지고, 건조하면 당기는 순간 찢어져버린다.
우리가 즐겨먹는 면사랑의 소면은 ‘다가수숙성(多加水熟成)’이라 불리는 방식으로 충분한 수분을 반죽에 흡수시켜 만든다. 이렇게 하면 균일하고 안정된 글루텐 조직을 형성할 수 있어 면을 조리하는 중에도 쉽게 퍼지지 않는다. 조리 후에는 부드럽지만 탄력이 살아 있는 식감을 느낄 수 있게 된다.

수연과 수타 제면기술을 재현하여 연타면발로 만드는 과정,
반죽한 면 반죽을 면압기에 옮겨 늘리며 숙성시킨다. ㈜면사랑 진천 공장
연타(延打), 수연과 수타의 교차점
좋은 소면의 핵심은 ‘늘림’과 ‘두드림’이다. 전통 방식의 수연소면은 손으로 천천히 늘려 가늘게 만들고, 수타면은 두드리며 밀도를 높인다. 현대의 제면 기술은 이 두 가지 방식을 결합해서 반죽에 적용하고 있다. 이른바 ‘연타(延打)’라 불리는 기술이다. 기계가 반죽을 반복적으로 늘리고, 두드리고, 숙성 시키는 과정을 되풀이한다. 이 과정에서 면발 속에는 미세한 공기층이 생기고 글루텐이 균일하게 형성된다. 소면을 만드는 비법 중의 비법이 바로 연타 방식이다. 어쩌면 사람의 손보다 더 정확하고, 잘 조절해 내는 현대 제면기술의 결정판이라 할 수 있다.
숙성(熟成), 면이 호흡하는 시간
면의 생명은 숙성에 있다. 숙성이란 단순히 기다리는 것이 아니다. 시간과 온도가 밀가루 입자 사이의 수분을 고르게 스며들게 하는 ‘호흡의 과정’이다. 이 과정을 제대로 거치지 않으면 면의 중심과 겉이 따로 놀게 되고, 삶을 때 터지거나 끊어지기 쉽다. 현대 제면 공정에서는 반죽이 여러 차례 숙성실을 오간다. 온도 25도, 습도 60%, 숙성 시간 2시간 30분. 조건 하나하나가 면의 표정과 식감을 바꾼다. 그 정교함 속에는 천천히 기다릴 줄 아는 현대의 기술이 숨어 있다. 장인의 감각을 정확한 기계의 수치로 재현하는 것이다.
건조(乾燥), 바람의 기술

바닷바람이 오가는 해안가의 소면 건조를 재현하기 위해, ㈜면사랑은 해풍 조건을 그대로 모사해 면발 속 수분이 천천히 빠져나가 특유의 고소한 풍미와 매끈한 식감을 담아낸다.
면을 완성하는 마지막 단계는 ‘건조’다. 이 과정은 단순히 수분을 제거하는 것이 아니라 면의 향과 식감을 결정짓는 매우 중요한 순간이다. 예전 장인들은 겨울의 찬바람과 해풍에 면을 말렸다. 오늘날 건조 소면 공정은 바로 그 자연의 리듬을 실내에서 재현하고 있다. 건조기는 계절의 변화를 계산한다. 봄에는 서늘한 바람, 여름에는 완만한 온도, 겨울에는 낮은 습도를 조절해 최적의 조건을 맞춘다. 온도는 섭씨 25도에서 40도 사이, 수분 함량은 12%내외로 조절된다. 기계도 날씨를 읽고 하늘의 표정을 읽는다. 그날의 온도와 습도를 고려해서 최적의 바람을 불어넣는다. 그 바람은 자연의 해풍을 닮도록 설계되어 천천히 면이 마르며 표면에는 고소한 밀향이 피어나도록 세심하게 작동되고 있다.
소면은 밀가루와 물, 그리고 바람 이 세 가지 요소에 따라 맛과 품질이 결정된다. 이들 요소를 어떻게 결합하는지에 따라 면의 세계는 전혀 다른 차원의 맛과 풍미를 보이게 된다. 기계는 장인의 감각을 재현하고, 그 노하우를 접목시킴으로써 세대와 계절을 넘어 일관된 품질을 만들어내게 되었다. 소면 세계에서의 기술은 결국 사람의 세심한 손끝을 착실하게 닮아가고 있는 것이다.
가늘고 단단한 면발은 수많은 반복과 기다림, 그리고 보이지 않는 섬세함이 스며 있다. 인간이 추구하는 맛의 ‘완벽한 균형’을 향한 끝없는 탐구의 결과다. 이제 소면은 기술과 전통, 속도와 느림, 인공과 자연이 한데 어우러져서 사람에게 예술의 맛을 선사하고 있다 하겠다.

글 김석동 전 장관
지평인문사회연구소 대표
2004년 재정경제부 금융정책국장, 2005년 재정경제부 차관보, 2006년 금융감독위원회 부위원장, 2007~2008년 재정경제부 제1차관을 거쳐 2011~2013년 금융위원회 위원장으로 일했다. 30여 년간 우리나라 경제 성장과 안정을 위해 헌신한 정통 경제 관료 출신이다. 지은 책으로 《한 끼 식사의 행복》이 있으며, <인사이트코리아>에 ‘김석동이 쓰는 한민족 경제 DNA’를 연재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