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에게는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따뜻해지는 오래된 단골 칼국수집이 하나 있다.
40년 가까이 한자리에서 칼국수 한 가지만을 팔아온 노포(老鋪)로, 칼국수를 한 그릇 달게 먹고 나면 한동안 용기를 내어 열심히 살아볼 마음이 들게 하는 그런 곳이다. 그 흔한 TV에도 한번 소개된 적 없고, 구석진 골목길 맨 끝자락에 위치해 있어 항상 오랜 단골들만 찾는 조용한 가게다.
어린 시절 나는 부모님을 따라 외출을 하고 돌아올 때면 늘 이 가게에 들러서 칼국수를 먹었다. 맞벌이로 바쁜 부모님 입장에선 온 가족이 따뜻하게 한 끼를 해결하기에 칼국수보다 더 좋은 메뉴는 없었던 것이다.
당시 아버지는 이 가게에서 식사를 하고 나올 때면 “먹을 때마다 느끼는 거지만 이집 칼국수는 옛날 어머니가 끓여주시던 맛 그대로야. 항상 어머니가 해준 칼국수를 먹는 기분이라니까.”라며 감탄사를 연발하곤 했다.
그래서일까. 세월이 흘러 불혹을 넘긴 나이가 되고 보니 당시 아버지가 무슨 뜻으로 그런 말씀을 하신건지 공감이 간다. 지금은 나도 그 시절 부모님 못지않게 칼국수를 좋아한다. 멸치와 다시마로 끓인 깔끔하면서도 감칠맛 도는 국물에 손으로 직접 썰어 투박하지만 찰지고 쫄깃한 면발이 넉넉히 담긴 이곳의 칼국수는 입맛이 없을 때도 언제나 만족스럽게 한 그릇을 뚝딱 비울 수 있게 하는 어떤 특별한 맛과 매력이 담겨져 있다. 그 어떤 화려한 음식도 담아내지 못하는, 마치 세상의 모든 정겨움이 녹아든 맛 같다.
특히 마음까지 허허로워지는 겨울철이 찾아오면 나는 하루가 멀다 하고 이 가게를 찾는다. 이곳에서 따끈한 칼국수 한 그릇을 비우고 나면 그 어떤 산해진미로도 채워지지 않는 공허한 마음속 허기가 싹 가시고 마음까지 따뜻해지기 때문이다. 특히 쌀쌀하고 추운 겨울날, 감기 등으로 몸 상태가 좋지 않을 때는 어릴 적에 먹던 익숙한 옛 맛이 계속 생각나 계속 이곳을 드나들게 된다.
매서운 추위가 기승을 부리던 올해 초 늦겨울, 가족들과 함께 칼국수집이 있는 동네 골목으로 들어섰는데 지난번에는 보지 못했던 치킨집이며 파스타가게 등 새로 개업한 프랜차이즈 음식점 몇 곳이 눈에 들어왔다. 내가 나고 자란 곳으로, 익숙하기만 했던 이 동네가 조금은 낯설어지는 순간이었다.
‘삐거덕- 끽’ 가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서자, 추억이 곰삭은 익숙한 냄새와 난로 위에서 끓고 있는 주전자가 덩그러니 우리를 반긴다. 주인아저씨가 가볍게 목 인사를 하고 옥수수차를 가져다주었다.
주인 부부는 늘 그렇듯 말이 없다. 아내는 장사하시는 분들이 너무 무뚝뚝한 것 아니냐며 가끔씩 볼멘소리를 한다. 분명 요즘 시대에는 안 맞는 구닥다리 스타일일 수 있다. 하지만 직접 옥수수를 넣어 끓인 따뜻한 차와 변함없이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박하사탕 바구니에서 나는 늘 주인 부부 나름의 살가움을 느낀다.
그래서 칼국수 한 그릇을 깨끗이 비우고 나면 항상 융숭한 대접을 받은 기분이 든다. 볼멘소리를 하던 아내 역시 칼국수를 다 먹고 나올 때만큼은 늘 만족스러운 표정을 짓는다.
아이들이 스마트폰을 보는 사이 아내와 함께 낡은 거울을 바라보며 칼국수를 기다렸다. 테두리가 나무로 된 거울에는 ‘1986년 3월 5일 축 개업’이라고 적혀 있었다. 아마 개업을 했을 당시에는 주인 부부가 지금 우리 부부보다 훨씬 젊었을 것이다. 그들은 ‘축 개업’이라고 적힌 거울 앞에 서서 과연 얼마나 많은 꿈을 꾸었고, 또 얼마나 고된 현실을 버텨냈을까.
드디어 기다리던 칼국수가 나왔다. 오래전부터 한결같은 맛으로 내 허기를 채워준 바로 그 칼국수다. 아이들의 칼국수는 따로 부탁을 하지 않았는데도 달걀 고명이 더욱 듬뿍 들어있었다. 무뚝뚝해 보이는 겉모습과 달리 주인 부부의 세심한 배려가 느껴지는 순간이다.
오늘따라 유독 주인아주머니의 인심이 후하다. 찰진 면이 대접 가득 푸짐하게 들어있어 족히 2인분은 되는 것 같았다. 가게 인근에 치킨, 파스타 등 요즘 사람들이 좋아하는 음식점이 늘어나 경쟁이 심화되니 양을 확 늘린 것일까. 아니면 티는 내지 않았지만 40년 단골을 이제야 알아본 것일까. 어쨌거나 대접 가득한 칼국수면 덕분에 흥이 절로 났다.
후루룩 – 소리를 내며 쫄깃한 면발을 입에 넣고 뜨거운 국물을 들이켜니 입 안 가득 행복감이 퍼진다. 반찬은 깍두기 하나가 전부지만, 잘 익은 깍두기 하나를 입 안에 넣자 형용할 수 없는 행복한 맛이 전해진다. 오래 전 부모님과 함께 칼국수를 먹었을 때의 뭉클한 감정도 새삼 다시 솟아오른다.
금세 칼국수 한 그릇을 뚝딱 비우곤 계산을 하기 위해 카운터 앞에 섰다. 주인아저씨가 무언가를 말하려는 듯 입가를 달싹거리다가 이내 입을 다문다. 웬일인지 주인아주머니까지도 주방에서 나와 우리에게 말없이 인사를 건넨다. 왠지 인심도 서비스도 후한 특별한 날이었다.
계산을 하고 습관처럼 바구니에서 박하사탕을 하나 꺼내 입안에 집어넣었다. 출입문을 열고 걸어 나오는데 문 귀퉁이에 붙은 조그만 흰색 종이가 눈에 들어온다. 가게에 들어올 때는 미처 보지 못했던 것이다. 사인펜으로 삐뚤빼뚤 쓴 문구가 나를 당혹스럽게 만든다.
「○월 ○일자로 영업을 중단합니다. 오랜 시간 감사했습니다. 좋은 인연을 계속 이어가지 못해 죄송합니다.」
순간 알싸한 박하향이 올라와 코끝을 찡하게 울린다. 단순히 배를 채워주는 음식을 넘어 나에게 삶의 온기를 전해주던 곳인데, 이제 곧 폐업이라니…. 아쉽다 못해 허탈함마저 몰려왔다.
나는 몸을 돌려 다시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곤 지금까지 한결 같은 맛으로 내 마음 속까지 따뜻하게 해준 그분들을 향해 꾸벅 인사를 하고 나지막이 말했다.
“그동안 정말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 앞으로도 이곳의 칼국수는 절대 잊지 못할 거예요.”
연일 강추위가 계속되며 어느새 겨울이 성큼 다가온 요즈음, 벌써부터 그 가게의 칼국수가 그리워진다.
글쓴이 : 정승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