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가정법원 건물 밖으로 나서는 순간, 차가운 바람이 얼굴을 후려쳤다. 손에 쥔 판결문은 차가웠다. ‘이혼 인용’. 이 네 글자가 내 지난 몇 년을 정리해버렸다. 실감이 나지 않았다. 그저 텅 빈 마음. 어디로 가야 할지 몰랐다.
발걸음은 저절로 움직였다. 법원 근처 낡은 간판의 칼국수집 앞에 멈춰 섰다. 문을 열자 따뜻한 공기가 붉어진 얼굴을 감쌌다. 들깨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 묘하게도 그리워하던 냄새 같았다.
구석 자리에 앉아 들깨칼국수를 주문했다. 주인아주머니가 따뜻한 물 한 잔을 먼저 내밀었다. 물을 마시는 동안 뜨거운 솥에서 들깨물이 익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보글보글. 지난 시간들이 떠올랐다.
골프장 캐디로 일하던 그때. 뜨거운 태양 아래서 손님들의 가방을 메고 코스를 누볐다. 그때 그 사모님을 만났다. 명품 골프백을 들고 샤넬 향수를 풍기며 라운딩을 나오시던 분. “우리 아들 한번 만나볼래요?”
부잣집 아들. 나한테는 과분하다고 생각했다. 그분의 진심 어린 눈빛에 마음이 움직였다. 지금 생각하면 그게 진짜 따뜻함이었는지 모르겠다.
만남은 자연스러웠다. 그는 조용하고 예의 바른 사람이었다. 프러포즈를 받았을 때 행복했다. 결혼식은 소박했지만 따듯했다. 시어머니는 내 손을 꼭 잡으며 말했다. “이제 우리 가족이야.” 진심이라고 믿었다. 그때는.
결혼 직후에 그 말이 나왔다. “우리가 조카를 좀 키워야 할 것 같아.” 죽은 남편의 형부부 대신 시어머니가 키우고 있던 그 아이. 그때 더 물어봤어야 했다. 하지만 망설이지 않았다. 결혼은 사랑이고, 사랑은 품는 거라고 믿었으니까.
근데 뭔가 이상했다. 시어머니는 그 아이한테 너무 집착했다. 내가 훈육하려고 하면 막아섰고, 남편도 그 아이를 유난히 챙겼다. 형의 아이니까 그런가 싶었다.
이불 정리하는 날, 시어머니 장롱 속에서 오래된 사진첩을 발견했다. 남편과 한 여자, 그리고 아기 사진. 뒷면에 적힌 글씨. “우리 아들 첫 돌”. 그 순간 모든 게 맞춰졌다. 그 아이는 조카가 아니었다. 남편의 친아들이었다.
남편을 추궁했다. 한참을 말이 없다가 고백했다. 전처가 있었고, 그녀와의 사이에서 아이가 태어났고, 전처는 아이가 어렸을 때 교통사고로 사망했다고. 그리고 시어머니는 남편의 장모, 즉 전처의 어머니였다.
처음부터 계획된 일이었다. 사랑으로 시작한 결혼이라고 믿었는데, 그들한테 나는 그저 죽은 딸을 대신할 며느리, 손자를 돌봐줄 사람일 뿐이었다.
“왜 말 안 했어?” 소리쳤다. 그는 대꾸도 안했다. 변명도 안 했다. 그게 더 화났다.
모든 게 무너졌다. 시어머니의 따뜻한 미소도, 남편의 다정한 말도, 모두 계산된 연극이었다.
들깨칼국수가 나왔다. 김이 모락모락 피어오르는 하얀 그릇. 주인아주머니가 들깨가루를 한 스푼 더 넣어주며 말했다. “오늘 좀 추우니까 진하게 드세요.” 숟가락으로 천천히 국물을 저었다. 들깨가루가 녹아들며 국물이 점점 뽀얗게 변했다. 마음속에 쌓였던 분노와 배신감, 공허함도 천천히 가라앉는 것 같았다.
이혼 소송은 길었다. 남편은 끝까지 잘못을 인정 안 했다. 시어머니는 나를 나쁜 며느리로 만들려 했다. “조카도 못 키워주고 떠나는 몰인정한 여자”라고. 그 말을 들었을 때 웃음이 나올 뻔했다. 조카가 아니었는데.
법정에 서는 날은 차가웠다. 판사 앞에서 진실을 말할 때 목소리가 떨렸다. 그래도 끝까지 말했다. 내가 얼마나 상처받았는지, 얼마나 속았는지. 남편은 끝까지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전처의 엄마는 울었다.
주방에서 국물이 끓는 소리가 들렸다. 보글보글. 모든 감정이 끓어오르고, 증발하고, 다시 가라앉는 과정.
첫 숟가락을 떴다. 국물이 입안에 퍼졌다. 고소했다. 그렇게 고소할 수가 없었다. 그 끝에는 그 고소함 속에 약간의 씁쓸함이 섞여 있었다. 눈물이 났다. 뜨거운 국물과 차가운 눈물이 입안에서 섞였다. 맛이 이상해졌다. 짜고, 달고, 쓰고, 고소하고. 모든 맛이 한꺼번에 밀려왔다.
용서도 아니고, 미움도 아니었다. 그냥 내 삶을 다시 삼키는 맛이었다. 배신당한 시간, 거짓 속에서 살았던 날들을 다시 내 안으로 받아들이는 과정.
혼자였다. 낡은 칼국수집에서 판결문을 옆에 두고 혼자 들깨칼국수를 먹고 있었다. 그럼에도 외롭지 않았다. 이 순간이 편안했다. 김이 피어오르는 그릇 위로 내 인생도 다시 끓기 시작하는 것 같았다.
면발을 입에 넣었다. 쫄깃했다. 살아있는 식감. 나도 살아있었다. 거짓된 결혼 생활 속에서도, 법정에서 싸우는 동안에도 계속 살아왔다. 지금도 살아있다.
한 그릇을 다 비우는 데 오래 걸렸다. 천천히, 한 숟가락씩. 마지막 국물까지 다 마셨다. 그릇 바닥이 드러났을 때 후련했다. 숟가락을 내려놓았다.
계산하려고 일어섰을 때 주인아주머니가 말했다. “맛있게 드셨어요?”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정말 맛있었어요.” 아주머니는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또 오세요.”
밖으로 나왔다. 여전히 추웠다. 바람은 차갑고 도시하늘은 잿빛이었다. 근데 마음속은 든든하고 따뜻했다. 뱃속에서 들깨칼국수가 소화되며 퍼지는 온기. 손끝까지, 발끝까지 퍼졌다.
판결문을 가방에 넣었다. 그냥 종이였다. 한 페이지가 끝났다는 증명일 뿐. 새로운 페이지는 비어있었다. 뭘 쓸지는 내가 정할 수 있었다.
걸었다. 어디로 가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었지만 발걸음은 가벼웠다. 차가운 겨울 공기를 들이마셨다. 속 깊이 들어온 공기는 더 이상 공허하지 않았다. 살아있다는 느낌으로 가득했다.
그날 들깨칼국수는 나에게 자유의 첫 한입이었다. 그 고소한 국물 속에 내 지난날의 눈물과 새로운 시작이 함께 녹아 있었다. 씁쓸함도 있었고, 고소함도 있었고, 뜨거움도 있었고, 따뜻함도 있었다. 그 모든 맛이 섞여 내 인생의 맛이 됐다.
겨울은 여전히 차갑지만 나는 더 이상 얼어붙지 않을 것이다. 들깨칼국수 한 그릇이 녹여준 건 단순한 몸의 추위가 아니었다. 얼어붙었던 마음, 멈춰섰던 시간, 잃어버렸던 나 자신. 그 모든 게 다시 흐르기 시작했다.
나는 걷는다. 새로운 길 위를, 혼자지만 외롭지 않게, 차갑지만 따뜻하게. 언젠가 다시 그 칼국수집을 찾을 것이다. 그때는 눈물이 아니라 미소로, 해방이 아니라 평온으로 그 고소한 맛을 즐길 수 있기를.
글쓴이 : 백민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