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하늘과의 동업으로 낳은 얇은 면 하나
완연한 가을의 기운이 깃든 11월의 어느 날, 면 장인으로 꼽히는 권오길 대표를 만나기 위해 경기도 파주시 법원읍에 위치한 권오길 국수학교를 찾았다.
만화 식객에서는 그의 소면 국수공장이 소개되었지만, 그는 칼국수 장인으로도 널리 알려져 있다.
여러 번의 수술로 삶의 고비를 넘긴 뒤 현재는 제면기술을 전수하는 학교 운영뿐 아니라 국수를 통한 나눔 활동까지 펼치며 제2의 길을 걷고 있다.
‘떡’질로 시작한 국수 인생
국숫집 직공일을 하시던 아버지 밑에서 어린 시절을 보낸 권오길 대표는 서울 신길동에서 시작한 부친의 창업으로 국수일을 배우게 됐다고 회상했다. “초등학교 5학년 때부터 국수기계에 떡(국수 반죽)을 밀어 넣는 일을 했어요. 밀가루 반죽이 어찌나 하얗던지 무지하게 손을 씻었지”. 그의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졌다. 그리고는 “오늘날 내가 국수장사를 하게 된 건 그 때 부터예요. 아버지가 국수를 잘 만드셨거든. 그때 느끼던 손맛이 내 기준이 된 거지”. 돈 주고도 살 수 없는 경험의 척도, 어린시절 고사리 손으로 느끼던 반죽의 손맛은 고스란히 그만의 면 기술로 체화됐다.
소면기술의 정수 : 제조와 건조
권오길 대표가 고수하는 소면기술의 척도는 50% 제조기술과 50% 건조기술, 이 두 축의 완벽한 조화이다. 제조기술에는 밀가루의 반죽과 숙성이 포함된다. 면 제조 과정에서 반복해서 강조한 것은 ‘손의 감각’이었다. 그는 반죽할 때 손을 집어넣어 일정한 압력을 주고 물과의 밸런스를 맞추는 순간이 “국수의 맛이 결정되는 지점”이라고 말했다. 면 특유의 탄력과 매끈함이 최고점에 달하는 그 찰나를 손끝으로 잡아내는 것이다.
건조 또한 중요하다. “잘 건조된 소면은 사과도 뚫을 수 있다”며 겉으로는 가늘지만 그 안은 정밀하고 복잡한 기술이 숨어 있음을 설명했다. 권 대표가 고수하는 소면의 수분함량은 13~14% 이다. 소면에서 건조의 완성도는 수분에 대한 저항력과 길을 같이 한다. 물에 삶거나 했을 때 잘 불지 않고 끝까지 제 모습을 지킨다는 뜻이다. 지금까지도 권 대표의 소면은 자연건조 방식을 거친다. 창문을 열고, 선풍기를 쐬고, 햇볕에 말리는 지난한 과정을 꼬박 3일 동안 반복해야 세상에 나올 수 있다.
설명을 듣다 보니 선선한 바람이 좋은 ‘가을국수’가 최고의 소면인지 궁금했다. 권 대표는 곰곰이 생각하더니 어려운 질문이라며 또 다른 주제를 꺼냈다. ‘염도’였다.
염도로 완성하는 사계절의 자연건조
한국은 사계절이 뚜렷한 나라다. 계절에 따라 변하는 기후는 천양지차. 건조에 지대한 영향을 미치는 습도도 마찬가지다. 권 대표는 습도에 따른 염도의 균형이 건조를 완성하는 핵심이라고 꼬집었다.
봄·가을에는 습도와 온도가 비교적 적당해 자연건조가 수월하고, 여름에는 높은 습도와 더위로 인해 건조 시간이 길어지며 면발이 늘어지거나 품질이 흔들릴 수 있다. 반대로 겨울에는 건조 속도가 빨라지지만 너무 빨리 마르면 수분 함량이 급격히 떨어져 면이 파괴되기 쉽다. 따라서 사계절에 따른 염도 변화를 통해 건조기술을 조정하고, 반죽의 숙성 시간을 유연하게 설계하는 것이 전통적인 소면생산 방식에서는 매우 중요하다.
권 대표는 AI에 자연건조에 최적화된 소면 반죽의 염도를 물어본 들 답이 나올 턱이 없다고 자신했다. 그는 “오죽하면 소면은 하늘님과 동업해야 만들 수 있다”는 말이 나왔겠냐며 그간의 고초를 한 마디로 정리했다.
좋은 소면이란 무엇인가 :
최고가 아닌 중심선을 향하다
최고의 장인이 인정하는 ‘즣은 면’이란 무엇일까. 권오길 대표는 “맛의 중심선(中心線)”을 잘 잡는 것이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요즘 음식과 재료는 최고를 지향한다. 소면은 다르다. 최고가 아니라 최다, 많은 사람들을 만족시킬 수 있는 맛을 가져야 한다고 설명했다. 너무 올라가면 내려가야 한다. 상위 10%·하위 10%의 극단을 버리고 사람들 입맛을 만족시킬 수 있는 식감과 탄력, 그리고 일상 속의 맛에 집중해야 한다고 다시금 강조했다. 얇고 가지런한 면발 속에 담긴 그만의 철학이 어렴풋이 느껴졌다.

좋은 면을 위한 매듭 하나,
권오길 손국수 (식당)
면 만드는 기술 뿐 아니라 삶아 내는 기술도 특출 났는지 식당도 성공했다. 주메뉴는 칼국수다. 쫄깃한 맛이 일품인 생면으로 칼국수를 만들었다. 문 열기에 앞서 김치며, 양념이며 전국에 유명하다는 칼국수 집을 찾아가 응당의 비용을 지불하고 레시피를 구했다. 어림 잡아 1억이 넘는 비용이었다. 그렇게 어렵사리 구한 비법노트는 국수에 버금가는 최상의 맛을 선사했다. 여기에는 권 대표 아내의 손맛이 한 몫 했다. 주말이면 천 명이 넘는 손님이 찾았다. 몸은 축났지만 마음은 행복했던 시절이다.
장인의 면 삶는 법은 어떨까. 중요한 것은 면을 건져낸 후의 후반작업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삶은 후에는 곧바로 찬물 한 번, 그리고 얼음물에 한 번 훌훌 헹궈 면발을 응축시키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이렇게 하면 면이 탱탱해지고 ‘불지 않는’ 상태로 유지 된다는 것이 그의 설명이다.
권오길 대표가 선호하는 국수양념은 단촐하다. 맛간장과 참기름이다. 입맛에 맞게 간장으로 간을 맞추고 참기름으로 향을 더한다. 권 대표는 “좋은 재료는 그 자체로 훌륭하다는 말처럼, 국수 또한 최소한의 양념으로 면 그 자체의 맛을 즐기기에 충분하다“며 말을 마쳤다. 참기름 향에 면맛이 가려질까 걱정하는 눈치였다.
타협 없는 국수인생의 변곡점 하나
끊임 없는 노력과 타협 없는 그의 국수인생에서도 변곡점은 있었다. 사실 권 대표는 몇 번의 수술과 생사를 오가는 고비를 거쳤다. 사경을 헤매고 다시 자리에서 서자 자신의 일상과 국수 만드는 일에 대한 태도는 바뀌었다. 변화는 재료 선택에서 시작됐다. 밀가루도 소금도 한층 더 엄격하게 선별했다. ‘부드럽고 쫄깃한 얇은 면’이 아니라 ‘좋은 재료로 제대로 만든 면’이 무엇인가를 진지하게 고민하게 된 시점이다.
기술을 통한 나눔도 시작했다. 당시 권 대표와 권 대표가 운영하는 국수가게는 방송과 신문에 자주 등장하며 전국구 국수 맛집으로 유명세를 달리고 있었다. 돈을 다발로 들고 오는 것도 모자라 분점을 내 달라고 울며불며 난리치는 일도 다반사. 가뭄에 콩 나듯 기술을 배우겠다는 이들이 찾아왔다. 찬찬히 그간의 이야기를 들어보니 ‘이 사람은 끝까지 배우겠구나. 그리고 이루겠구나’ 싶은 몇몇이 있었다.
그렇게 권오길 대표에게 제면기술을 전수 받아 자신의 터를 잡고 다시 일어선 사람들이 스무 명이 넘는다. 중증장애인들에게 일자리를 마련해주기 위해 문을 연 국수집인 청주시 미원면에 위치한 담쟁이장애인보호작업장에도 비법을 전수했다. 제면에도 매장에서 만들어내는 국수 한 그릇에도 권 대표의 한 수가 깃들었다.
아들도 딸도 원치 않는 소면 만들기,
그리고 백년대계
한 가지 아쉬운 게 있다면 ‘손맛’이 살아 있는 전통 소면 제작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 방대하고 험난한 경험의 축적에 비해 소면의 가격은 초라하기 그지 없다. 인정 받지 못하는 노력의 가치에 장인의 기술은 외면 받을 뿐이다.
권 대표는 “본래 권오길 국수학교는 아들과 함께 소면을 만들 생각으로 시작한 공장터”라고 했다. 한동안 같이 하던 아들은 “아직은 소면을 배울 단계가 아닌 것 같다”며 겸양의 자세를 표했다. 그는 “기술이 없는 것이 아니라 힘들어서 한 발 물러선 것 같다”고 넌지시 아들의 마음을 헤아렸다. “아버지 때부터 했으니까 내가 몇 십 년 했고, 아들이 본점에서 칼국수를 만들고 있고하니 곧 백년대계가 될 것 같아요”. 소면이 아니더라도 면으로 길게 또 길게 가업이 이어지길 바라는 마음이 곳곳에서 묻어났다.
[에필로그]
마지막으로 권오길 대표가 생각하는 ‘소면’에 대해 물었다.
“시원하게 담긴 국수 한 그릇은 뜨거운 여름에 대한 보상이고,
푸짐히 담은 소면은 오고 가는 정이 아닐까요.”
정성과 감각으로 완성하는 면에 대한 소명.
권오길 대표가 장인으로 존경받는 이유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