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우리 동네에는 유명한 중국집들이 많다. 불과 1킬로미터 반경 안에 전국 3대 짬뽕으로 불리는 「진흥반점」이 있고, 탕수육으로 이름난 「덕성반점」 그리고 깔끔한 불맛으로 손님을 모으는 「현짬뽕」이 있다. 세상에서 가장 평화로운 삼국지를 보고 있는 느낌이다.
짬뽕은 언제 먹어도 맛있지만 특히 겨울에 먹는 맛은 상상만으로도 침이 고인다. 현짬뽕의 불맛은 거칠지 않다. 맑게 타오르는 불처럼 입안에서는 칼칼함이 감돌지만 속은 편하게 정리된다. 면과 국물이 따로 놀지 않고 감칠맛은 끝까지 따라온다. 겨울의 찬 공기는 그 깊은 불맛의 해상도를 높인다. 춘장에 찍은 양파로 환기를 시키고 다시 국물을 마시면 짧은 휴식이 불맛을 더 선명하게 만든다. 겨울에 먹는 짬뽕만큼 맛있는 음식은 아마 바지락 칼국수 정도일 것이다. 아! 기차를 타기 전에 먹는 우동도 그 반열에 올릴 수 있겠다.
현짬뽕은 내가 대구에서 세 손가락 안에 꼽는 짬뽕집이지만 사실 가장 좋아하는 집은 아니다. 나는 개인적으로 은은하면서 깊은 여운을 잃지 않는 짬뽕을 더 좋아한다. 대구 송현동의 가야성 짬뽕이 그런 맛을 낸다. 그래도 내 인생에서 가장 자주 찾은 곳은 현짬뽕이다. 집에서 가깝다는 이유도 있지만 그보다 간판이 내 발길을 이끈다.
내 이름은 유호현. 어머니는 나를 ‘현아’라고 불렀다.
내가 네 살 무렵, 아버지는 공장을 인수하며 집안의 경제적 전성기를 열었다. ‘사모님’ 소리를 듣기 시작한 어머니는 같은 시기 아버지에게 강제로 이혼을 당했다. 아버지는 1년도 되지 않아 재혼을 했고 나는 계모 밑에서 유년기를 보냈다.
어머니는 재혼할 기회가 있었지만, 혹시라도 계모에게 쫓겨난 내가 갈 곳이 없을까 봐 혼자 지내는 길을 택했다. 그녀는 미용사였다. 미용실 간판에는 내 이름이 걸려 있었다.[현아 미용실]
그 이름은 어머니가 세상에 걸어둔 그리움이었다.
중학생 무렵, 아버지는 계모와 이혼했다. 영원할 줄 알았던 공장은 부도가 났고, 어머니는 아버지에게 연락해 ‘이젠 내가 현이를 돌보고 싶다’고 말했다. 아버지는 재혼하지 않고 기다린 어머니를 보며, 그녀의 사랑을 자신에 대한 순애보로 착각했다. 부유할 때 떠났던 어머니는 가장 비참할 때 돌아오셨다. 나를 위해서.
계모 밑에서 정서적으로 망가졌던 나는 어머니를 통해 비로소 회복되었다. 어머니는 끊임없이 애정을 표현했고 내가 얼마나 소중한 존재인지를 일깨워주었다. 미용실 간판은 그 사랑의 진실성을 증명하는 강력한 개연성이었다. 날 기다려준 사랑으로 인해, 결국 나는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가난했던 우리 집은 특별한 날에만 중국집 음식을 먹었다. 어릴 때부터 나는 짜장면이 세상에서 제일 좋았다. 그래서 늘 나는 짜장면 곱빼기, 어머니는 짬뽕을 시키셨다.
“어머니는 짜장면 안 좋아하세요?”
“이렇게 시키면 현이가 짬뽕도 먹을 수 있잖아. 국물도 같이 마셔보렴.”
그렇게 어머니가 시킨 짬뽕의 반은 내가 먹었다. 짬뽕에 들어간 홍합과 오징어가 왜 그렇게 맛있던지. 세상을 살아가면서 고등학생 시절 먹었던 짬뽕이 제일 맛있었다. 이제는 짜장면보다 짬뽕을 훨씬 더 좋아하게 되었다.
하지만 어머니는 몇 해 지나지 않아 유방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그날 이후에도 나는 여전히 어머니의 목소리가 들리는 것 같았다.
“현아.”
그 다정한 부름은 내 귓가에서 긴 여운처럼 남았다.
왜 현짬뽕이라 지었을까? 나는 일부러 사장님에게 묻지 않았다. 그냥 나 스스로 해석하고 조용히 감회에 젖고 싶어서다. 처음 오픈할 때부터 맛있었던 짬뽕은 지금 더 깊어졌다. 처음부터 걸어두었던 저 간판의 이름도 내게 더 깊이 박힌다.
내 인생의 겨울이었던 유년 시절. 그 겨울을 녹여준 건 ‘현아’라고 부르던 엄마였다. 그리고 올해, 나는 엄마보다 한 살 더 많아졌다. 상상 속의 엄마는 나를 오빠라고 부르지 않으셨다. 함께 나이를 먹어간 엄마는 80을 앞둔 노인이다. 엄마가 그리운 날이면 나는 또다시 현짬뽕을 찾는다.
“국물도 같이 마셔보렴.”
엄마의 목소리가 아직도 생각난다. 그 목소리는 너무 따뜻해서 귀를 막아도 체온처럼 들려온다.
그렇게 얼큰한 국물을 마시면, 혀에는 불맛이 남고 마음에는 그리움의 불씨가 다시 타오른다.
글쓴이 : 유호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