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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원도 막국수 로드: 춘천, 고성, 봉평, 서울까지
척박한 화전민의 식사였던 막국수가 어느새 SNS의 뜨거운 관심을 받고 줄을 서서 먹어야 하는 메뉴가 되었다. 냉면의 그늘을 벗어나 이제 인기 메뉴가 된 막국수는 지역마다 어떻게 다를까? 호기심에서 출발하여 강원도 막국수 취재를 다녀왔다. 주말에는 번호표를 뽑으면 4시간 이상 기다려야 하는 맛집도 있었고, 유명한 맛집이지만 휴가철이 아닌 평일은 그나마 취재가 어렵지 않은 곳도 있어 다행이었다.
본격적인 막국수의 계절이다. 강원도는 그 계절에 누구나 한 번쯤 생각해 보는 피서지이자 여행지다.
자! 이제 봉평, 고성, 춘천을 지나 서울까지 막국수 여행을 떠나보자.
01 춘천에서 만나는 진짜 여름
– 막국수의 고향, 영서
강원 영서 지방은 막국수가 처음 삶아진 땅이다. 그중에서도 춘천은 막국수를 하나의 문화처럼 지켜온 도시다. 깊은 산자락과 계곡이 감싸는 고장에서 메밀은 오래전부터 주식처럼 익어갔고, 삶의 시간을 품은 한 그릇으로 남았다. 이 지역의 막국수는 비빔 형태로 먼저 나오고, 기호에 따라 동치미 육수를 더해 먹는 방식이 일반적이다. 양념장은 자극적이지 않으면서 깊은 풍미를 품고 있다.

유포리막국수
춘천 외곽, 유포리라는 조용한 시골 마을. 1966년, 할머니의 손맛에서 시작된 유포리막국수는 지금까지 3대째 이어지고 있다. 메밀 80%에 밀가루와 전분을 더한 1.5mm의 도톰한 면발은 한 젓가락만으로도 메밀 고유의 고소한 풍미를 느낄 수 있다. 막국수는 기본적으로 비빔 형태로 먼저 나온다. 곁들여지는 동치미 육수는 손님이 주전자로 직접 붓는다. 조금 부으면 비빔, 넉넉히 부으면 물막국수. 취향과 방식에 따라 자유롭게 즐길 수 있다.
이 집의 진짜 매력은 동치미 육수. 매년 한 번, 큼직한 무를 담가 오랜 시간 숙성해 사용하는데, 자극적이지 않으면서도 깔끔하고 새콤한 맛이 오래도록 입안에 남는다.
(사진) 굵직한 면발과 시원한 동치미 육수가 인상적인 유포리막국수 @mir0065

샘밭막국수
1970년 문을 연 샘밭막국수는 춘천을 대표하는 막국수 맛집으로, 지금까지 변함없이 자리를 지켜오고 있다. 현재는 다른 지역에서도 체인점을 운영하며 그 명성을 이어가고 있다. 이곳의 면발은 메밀 80%에 쌀과 밀가루를 더한 배합으로, 전분을 사용하지 않아 질기지 않고 얇고 부드럽다. “잇몸으로도 끊어질 정도”라던 옛 어른들의 말처럼 부드럽지만 고소한 식감이 인상적이다. 육수는 사골을 고아 내고 여기에 동치미를 더해 맑고 시원하면서도 깊은 맛이 난다. 배와 양파를 넣고 10일 이상 숙성 시킨 양념장은 은은한 감칠맛이 돈다.
100% 메밀로 만든 면 메뉴도 따로 마련되어 있어, 보다 진한 메밀 본연의 맛을 즐기고 싶은 이들에게 제격이다. 정성스럽게 지켜온 기본의 맛. 샘밭막국수는 춘천의 ‘단단한 전통’을 오늘도 조용히 이어가고 있다.
(사진) 사골 육수의 진한 풍미와 얇고 부드러운 면발이 어우러진 샘밭막국수 ©주주미니 네이버블로그

현대메밀
막국수 하면 전통이 먼저 떠오르지만, 요즘 춘천에서는 그 전통 위에 감각을 더한 변화도 눈에 띈다. 현대메밀은 그런 흐름의 대표 주자다. 한옥 느낌의 구옥을 개조한 따뜻한 공간, 익숙하면서도 세련된 분위기 속에서 ‘간장 막국수’라는 색다른 막국수를 만날 수 있다.
현대 메밀만의 특제 간장 소스에 참기름과 깨가 더해져 깔끔하면서도 은은한 감칠맛이 좋다. 위에 더해진 새싹채소와 쪽파는 사진 찍는데 한몫 단단히 하면서 싱그러운 향과 함께 입맛을 산뜻하게 돋운다. 전통을 존중하면서도 고정관념에서 벗어난 시도, 막국수의 새로운 가능성을 담은 한 그릇. 데이트 장소로도 인기가 많은 이곳은 춘천 막국수를 가장 트렌디하게 보여주는 공간이다.
(사진) 익숙한 듯 낯선 매력으로 다가오는, 현대메밀의 간장 막국수 @daddy_is_emo
02 고성에서 만나는 여름의 깊이
– 동치미의 청량함, 영동
태백산맥을 넘어 동해를 마주한 영동 지방. 이곳 막국수는 영서와는 또 다른 방식의 맛을 담아낸다. 이곳 막국수의 가장 큰 특징은 ‘동치미 육수’다. 물 막국수 형태가 일반적이며 잘 숙성된 동치미의 시원하고 새콤한 맛이 한 그릇을 지배한다. 양념보다 국물이 중심이 되는 구성. 뜨거운 날씨 속, 첫 입부터 속을 가라앉히는 맑은 맛이 매력이다.

백촌막국수
강원 고성의 조용한 시골 마을. 백촌막국수는 단 두 가지 메뉴, 막국수와 편육으로 30년 넘게 손님을 맞이해온 집이다. 소박한 주택을 개조한 공간 안엔, 오직 한 가지 맛에 대한 믿음만 오롯이 존재한다. 그래서 긴 웨이팅조차 이곳에서는 당연한 풍경이다. 여름 주말이면 4시간은 족히 기다려야 한다.
백촌막국수는 양념 없이 면만 먼저 내어준다. 메밀 함량이 높은 도톰한 면발은 부드럽고 고소하며, 한 젓가락만으로도 메밀의 진한 향과 담백한 질감이 전해진다. 백김치, 열무김치, 명태회무침을 곁들이거나 별도로 나오는 동치미를 입맛 따라 더해 비벼 먹는다. 전체적으로 자극은 덜고, 조화와 균형을 살린 맛. 단출하지만 깊이 있는 한 그릇은 기본이 가진 힘이 얼마나 단단한지 느끼게 한다. 그렇게 길게 줄 서서 먹는 이유는 반드시 있다.
(사진) 메밀 본연의 맛에 동치미와 명태회무침으로 완성되는 백촌막국수 @midokim_

동루골막국수
강원 고성, 시골길 끝자락에 자리한 동루골막국수. 소박한 주택을 개조한 공간과 마당에 놓인 평상에서 막국수를 먹는 풍경은 마치 짧은 여름휴가의 한 장면 같다. 이 집 막국수는 얇은 메밀면 위에 다대기와 김가루를 얹어 비빔 형태로 먼저 나오고 살얼음이 뜬 동치미 육수는 뚝배기 같은 질그릇에 따로 제공된다.
툭 끊어지는 면발과 은은한 들기름 향, 그리고 직접 기른 채소가 어우러지며 고소하고 산뜻한 맛을 낸다. 곁들이는 반찬은 쌈무, 열무김치, 나물 세 가지로 단출하다. 푸짐한 양, 부담 없는 가격까지 더해져 여유롭게 즐기기 좋은 한 그릇. 여름 바람을 맞으며 평상에 앉아 비우는 그 한 그릇엔, 조용한 휴식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동루골막국수는 주차장도 넓어서 편리하다.
(사진) 신선한 채소와 고소한 얇은 메밀면이 만난 한 그릇 동루골막국수 @is_this_busan

교암막국수
교암막국수의 대표 메뉴는 단연 ‘들깨막국수’. 메밀면 위로 곱게 간 들깨가루를 한가득 뿌리고 참기름 한 방울 더해진 고소한 향이 입맛을 자극한다. 한입 먹는 순간 퍼지는 진한 들깨의 향. 들깨칼국수처럼 묵직하고 걸쭉한 느낌이 아니라 땅콩처럼 담백하고 캐주얼한 고소함이 입안 가득 번진다. 무겁지 않고 술술 넘어가는 맛. 더운 여름에도 부담 없이 즐기기 좋다.
곁들여 나오는 명태회무침은 이곳의 숨은 포인트. 살짝 새콤한 감칠맛이 들깨막국수의 고소한 풍미를 살려주며, 함께 곁들여 먹는 재미가 있다. 정갈한 접시에 담긴 들깨, 메밀, 명태회. 자극 없는 맛이지만 풍미는 가득하다. 교암막국수는 그 담백함으로 고요한 여름 바다처럼 오래 남는다.
(사진) 곱게 간 들깨가루와 참기름이 어우러진 교암막국수의 들깨막국수 @min__gourmand
03 메밀의 고향에서 만나는 막국수의 원형
– 봉평, 메밀의 고향에서 만나는 막국수의 원형
이효석의 소설 『메밀꽃 필 무렵』의 배경으로 잘 알려진 강원 평창군 봉평. 이곳은 지금도 메밀이 주요 작물로 자라는 ‘메밀의 고향’이다. 봉평의 막국수는 이 땅에서 직접 기른 메밀로 만들어낸 진짜 ‘메밀 면’의 맛이 담긴다.

봉평현대막국수
봉평시장 안쪽, 50년 넘게 한 자리를 지켜온 현대막국수. 벽면을 가득 채운 사인과 낙서가 이 집의 긴 역사를 말해준다. 대표 메뉴는 100% 국내산 메밀로 만든 순메밀국수. 전분 없이 뽑아낸 면은 투박하게 끊기면서도 탱탱한 식감을 지니고, 씹을수록 메밀 고유의 고소함이 은은히 퍼진다. 특이하게도 양배추와 상추채가 고명으로 올라가 산뜻함을 더하고, 양념장은 톡 쏘는 매운맛과 고춧가루 향이 강하다. 그래서 한 입만으로도 강렬한 인상을 남긴다. 과일과 채소로 우린 육수는 맑고 시원해 양념의 매운맛을 부드럽게 감싸준다. 소박하지만 탄탄한 기본. 현대막국수는 봉평에서 막국수의 정석을 보여주는 집이다.
(사진) 진한 메밀 향을 품은 순면에 톡 쏘는 양념이 어우러진 봉평현대막국수 @auto_prism

봉평고향막국수
평창 봉평에 있는 고향막국수는 강원도 5대 막국수 맛집으로 손꼽히는 곳이다. 이 집의 자부심은 무엇보다 재료에 있다. 봉평 지역산 메밀가루만을 사용해 만든 면은 ‘깐 메밀’로 뽑아내 부드럽고 깔끔하다고 자랑하고 있다. 육수에는 야채와 과일을 갈아 넣고, 설탕 대신 직접 기른 꿀로 단맛을 더한다. 한 그릇을 먹어도 속이 편한, 건강한 맛의 조화. 봉평식 갓김치 역시 직접 재배한 채소로 담근 것으로 은은한 감칠맛이 메밀국수와 잘 어울린다. 첨가물 없이 오직 순메밀과 자연 재료로 만든 한 그릇, 고향막국수는 봉평이기에 가능한 진심 어린 음식의 표본이다.
(사진) 봉평 메밀과 꿀, 직접 기른 갓김치로 완성한 건강한 조화 봉평고향막국수 @iama.bigpig

봉평메밀미가연
‘메밀 월드마스터’로 선정된 오숙희 대표가 운영하는 봉평메밀미가연은 메밀에 대한 깊은 애정과 연구가 담긴 막국수집이다. 대표 메뉴인 ‘미가면’은 100% 순메밀면 위에 들기름, 김, 깨, 메밀싹을 얹는다. 곱게 말아 올린 면발이 단정하다. 자극적이지 않고 은은한 고소함이 매력적이다. 함께 나오는 간장 육수에 살짝 담가 먹으면 담백한 풍미가 한층 살아난다. 메밀싹 육회, 묵무침, 메밀전 등 다양한 메밀 요리도 함께 즐길 수 있다. 봉평의 자연을 담은 듯한 맛. 이곳에서는 메밀이 주는 고요한 깊이를 천천히 음미할 수 있다.
(사진) 들기름과 메밀싹이 어우러진 순메밀 한 그릇, 봉평메밀미가연 @lsaera
04 막국수의 새로운 얼굴
– 서울, 막국수의 새로운 얼굴
서울의 막국수는 진화에 가깝다. 화전민의 음식이었던 막국수가 서울에 오면서 한껏 세련된 옷을 입었다. 비빔 양념은 더 달고, 육수는 더 시원하며, 고명은 화려해졌다.

고기리막국수
용인 고기리에 자리한 고기리막국수는 ‘들기름 막국수’로 새로운 막국수 트렌드를 만든 집이다. 간장, 김가루, 참깨, 고급 들기름만을 올린 단출한 구성이지만 깊고 세련된 맛이라고 할 수 있다. 비비지 않고 떠먹는 방식, 마지막엔 육수를 부어 마무리하는 독특한 스타일도 인상적이다. 육수를 부으면 차가운 온도로 면발의 탄력이 다시 살아난다. 국수는 매일 직접 제분한 메밀을 사용하고 물, 온도, 반죽 방식까지 정밀하게 계량해 품질을 유지한다. ‘막’국수가 아닌, 고급화된 메밀 비빔면으로 막국수의 새로운 기준을 만든 곳이다.
(사진) 들기름과 간장이 만든 세련된 깊이, 고기리막국수의 들기름 막국수 @gogiri.gram_chef

뱅뱅막국수
서울 양재동, 뱅뱅막국수는 첫인상부터 다르다. 비주얼부터 기존 막국수의 틀을 벗어난다. 넓은 놋그릇 위에 펼쳐낸 들기름 막국수는 파스타처럼 세련된 플레이팅으로 한눈에 감탄을 자아낸다. 핵심은 면이다. 쓴 메밀과 단 메밀을 블렌딩해 매일 아침 반죽하고, 자가제면 방식으로 압출 해낸 면은 쫀득한 찰기와 단단한 밀도를 동시에 지녔다. 면과 면 사이에 공기층을 만들도록 설계해 씹는 식감마저 특별하다. 들기름, 김가루, 깨, 감태, 궁채 장아찌가 섬세하게 얹혀 비비지 않고 젓가락으로 ‘뱅뱅’ 돌려 즐기면 된다. 기름지지 않고 은근한 고소함이 퍼지고, 깔끔하게 마무리되는 풍미가 오래 남는다. 서울 막국수의 진화. 뱅뱅은 보기 좋고, 먹기 좋은 새로운 표준을 만들어가고 있다.
(사진) 쫀득한 자가제면 면발과 감각적인 비주얼로 재해석한 뱅뱅막국수 @memini_pig

성천막국수
1966년, 평안남도 성천 출신의 1대 주인장이 문을 연 성천막국수는 3대째 가업을 이어오며 한결같은 맛을 지켜온 곳이다. 대표 메뉴는 맑은 동치미 육수에 메밀면만 담긴 물 막국수, 그리고 참기름과 양념장이 어우러진 비빔막국수.
동치미 육수는 깔끔하고 시원하며, 메밀면은 투박하면서도 고소하다. 비빔막국수는 똬리를 튼 면 위에 양념이 한 숟갈 올려져 고소하면서도 깊은 감칠맛을 낸다. 유일한 반찬인 무짠지는 식초·겨자·양념장을 곁들여 면과 함께 먹으면 별미다. 식사 전 따뜻한 면수도 제공되어 속까지 편안하다.
답십리 본점과 논현점 모두 웨이팅이 길기로 유명하다. 그 웨이팅을 뚫고 식탁에 앉으면 투박하지만 진정성 있는 한 그릇의 내공을 맛보게 될 것이다.
(사진) 동치미 육수와 투박한 메밀면으로 막국수의 진수를 담아낸 성천막국수 @71.51
춘천, 고성, 봉평, 서울까지…
길고 긴 막국수 로드를 마치며… 한국의 여름은 국수의 계절이다.
면의 종류도 다양하지만 그 종류에 따른 변주도 무궁무진하다.
오늘은 어떤 면의 종류를 고를까? 어떤 집에서 먹을까? 메뉴는 어떻게 정할까?
길고 길어진 여름, 그 만큼 다양해지고 풍부해진 선택지를 놓고 식도락을 즐기는 것은 어찌 즐거운 일이 아닐까.

글 박현진 편집인
누들플래닛 편집인
IMC 전문 에이전시 ‘더피알’의 PR본부장이자 웹진 <누들플래닛> 편집인을 역임하고 있는 박현진은 레오버넷, 웰컴퍼블리시스, 화이트 커뮤니케이션즈, 코래드 Ogilvy & Mather에서 근무하며 20년 동안 100개 이상의 브랜드를 경험했다. 켈로그, 맥도날드, CJ제일제당, 기린프로즌나마, 하이트진로 등 국내외 다수 식품 기업의 광고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하였으며, (주)한솔에서 브랜드 담당자로 근무한 경력과 F&B 브랜드의 마케팅을 담당한 이력이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