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시대 대구 최초의 국수공장 소곡제면소 ©도심재생문화재단
제법 규모가 컸던 1948년 소표국수 공장 ©소표국수 홈페이지
전 세계에서 가장 많은 종류의 면을 즐기는 나라가 모여 있는 곳이 바로 동아시아 3국이다.
면식 문화는 동아시아가 공유한 미각의 공통 언어처럼 보인다.
그러나 면이 만들어지는 방식과 면을 끓이고 담는 방식도 각기 다르고 차이도 어마어마하다.
한국의 소면, 일본의 소멘, 중국의 용수면은 모두 ‘가는 면’이라는 카테고리에 속하지만 나라별 기후와 노동의 방식, 자연을 대하는 태도가 다른 모양으로 다양한 층위를 만들고 있다.
한국의 소면,
건면 제조 100년사
한국의 ‘국수 문화’는 오래되었지만, 우리가 지금 익숙하게 먹는 건조 소면(乾麵)의 역사는 사실 100년 남짓이다. 건면 제조의 시작점은 19세기 말~20세기 초다. 1890년대 이후 일본에서 들어온 제분·제면 기술이 조선에 전파되면서 처음으로 밀가루 기반 건조 면을 대량 공급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되었다. 특히 1900년대 초 일본 상인과 기술자들이 조선 각지에 ‘제면소(製麵所)’를 설립하며 건면 산업의 기반이 잡혔다. 1920~1930년대는 한국 건면 역사에서 중요한 시기다. 이 시기 일본식 제면기, 절단기, 건조 설비가 본격적으로 도입되며 기계 건면이 생산되기 시작했다. 해방 이후인 1950~60년대, 한국은 밀가루 원조(PL480 프로그램)의 영향을 크게 받는다. 미국산 밀가루가 대량으로 공급되면서 건면 산업은 급성장한다. 이 시기 전국적으로 소규모 제면소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며 한국의 ‘소면’ 형태가 지금의 형태로 자리 잡았다.
1970~80년대는 기업형 제면 시대가 열린 시기다. 건조 방식의 표준화, 자동화 설비, 열풍 건조 기술이 도입되며 건면은 대량 생산 체계를 갖추었다. 이때부터 모양이 규격화되고 전국 유통망을 갖춘 제품으로 발전한다. 1990년대 이후에는 두 흐름이 공존한다. 하나는 대형 식품기업 중심의 기계 건면 산업의 고도화, 다른 하나는 일본 테누베(手延べ) 방식의 영향을 받아 발전한 수연소면(手延素麺) 이다.
한국의 수연소면은 전통이라기보다 일본 전통 기술의 현대적 변주이며, 짧은 역사 속에서도 빠르게 품질을 높이며 명품으로 발전하기도 했다. 한국에서 소면은 단순한 면을 넘어 의례의 음식으로 자리 잡았다. 잔칫날에는 잔치국수가 식탁을 채우며, 설렁탕과 함께 곁들이는 소면 사리는 편안함의 상징이다. 한국 소면은 그야말로 길게 이어지는 삶의 축복을 상징하는 선이다.

일본의 소멘,
장인이 이어온 역사
일본 소멘의 역사는 한마디로 장인이 이어온 시간의 역사다. 소멘의 원형은 나라 시대(710~794)의 음식 ‘삭병(索餅, 미키가와메)’ 으로 밀가루 반죽을 비틀어 꼬고 말린 형태였다. 이 기록은 8세기 『속일본기』에 남아 있으며 6월 1일에 사쿠베이(索餅)를 먹으면 병을 막는다는 풍습은 지금의 ‘소멘의 날(そうめんの日)’로 이어진다. 즉, 일본 소멘의 출발점은 단순한 식품이 아니라 제의·의례에 사용된 장인 음식이었다.
소멘의 중심지는 지금도 나라현 미와(三輪) 지역이다. 미와는 일본 소멘 산업의 발상지로 알려져 있으며 겨울의 건조하고 차가운 공기, 밤낮의 큰 일교차, 부드러운 미와 지하수가 소멘 생산에 이상적이었다.
이 지역 장인들은 반죽을 늘리고 쉬게 하고 다시 늘리는 전통적 수연(手延べ) 기법을 수백 년 전부터 이어왔다. 그 결과 미와 소멘은 얇고 매끄럽고 투명한 빛을 띠는 면으로 유명해졌다.

소면의 발상지로 알려진 나라현 사쿠라이시 미와 지역의 오미와 신사(大神神社)에서 올해의 소면 시세를 점치는 행사 ‘복정제(卜定祭, ぼくじょうさい)’가 열린다.
미와소면은 나라 시대(8세기) 당시 기근(饑饉)으로 인한 식량난 속에서 미와산의 맑은 샘물을 이용해 지역산 밀로 만든 대체식으로 시작된 것으로 전해진다. 오미와 신사는 예로부터 소면 제조의 수호신으로 신앙의 대상이 되어왔다.
복정제에는 나라현 미와소면공업협동조합과 미와소면판매협의회 관계자들이 참석하며 신사 앞마당에서는 소면의 제조 동작을 안무로 표현한 ‘미와소면가케우타(三輪素麺掛唄)’와 ‘미와소면온도(三輪そうめん音頭)’를 공연한다.
일본 소멘의 특징은 장인의 기술뿐 아니라 공동체가 기술을 지키는 구조에도 있다. 나라의 ‘미와소멘공업협동조합’, 효고현의 ‘이보노이토(揖保乃糸)’, 소도시마의 ‘시마노히카리(島の光)’ 같은 조직은 각 지역 장인들이 만든 소멘을 통합적으로 관리하고 동일한 기준으로 품질을 검사하며 전통 기술을 세대 간에 전승한다.
즉, 일본 소멘은 ‘한 장인의 기술’이 아니라 여러 장인의 기술을 지역 단위로 묶어 지켜온 산업적 전통이다. 이처럼 일본 소멘의 역사는 1,300년 동안 장인에서 지역으로, 협동조합을 통해 문화로 이어지는 계보의 역사다. 일본의 자연·기술·공동체 정신이 만들어낸 하나의 ‘백색 전통’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중국의 용수면,
손의 힘으로 뽑아낸 역사
중국의 용수면(龍鬚麵)은 이름처럼 ‘용의 수염처럼 가늘고 길게 늘인 면’을 뜻한다. 용수면의 기술은 송대(960–1279) 문헌에서 이미 나타난다. 청대(1644–1912)에 들어서 “龍鬚(용수)”라는 이름이 문헌에 본격 등장한다. 당시 기록에는 “細如龍鬚(용수처럼 가늘다)” “宴席に供す(연회 음식으로 올린다)”라는 문장이 보이며, 용수면이 고급 요리로 대접받았음을 알 수 있다. 중국 학자들은 당시 기록된 “細麵(세면:아주 가는 면)”과 “盤絲麵(가는 실처럼 늘인 면)”을 현재 용수면의 전신으로 평가한다. 용수면은 반복적으로 당기고 접고(反覆拉扯), 실처럼 분할하는 기술(分絲)을 통해 머리카락보다 가늘도록 만든다.
용수면은 산시(山西) 지방 특유의 산가(山歌)와 남녀의 대화형 민요가 곁들여지면서 자연스럽게 독자적인 문화적 색채를 이루게 되었고, 지금은 산시를 대표하는 음식 문화유산이 되었다. 산시를 방문하면 특별한 공연을 보듯 화려한 손기술로 면을 뽑아내는 장면을 감상할 수 있다. 용수면이라는 이름은 면이 머리카락처럼 가늘어 손에 올려두면 무게감조차 느껴지지 않을 만큼 가볍다는 데에서 유래한다. 이미 무형문화유산(非遺)으로 지정된 이 손으로 뽑는 용수면 기술은 점차 전승이 어려워지고 있다고 한다. 능숙하게 면을 공중에서 휘두르며 자유자재로 뽑아낼 수 있는 숙련된 장인은 면 요리가 주류인 산시 지역에서도 드물어진 상태다.
또한, 대만과 인접한 푸젠성(福建省)에서도 이 전통을 무형문화유산(非遺)으로 지정하며 “용수면은 송대 이래 민남 지역에서 전승된 극세 수제면”이라고 정의하고 있다. 광둥 조산 지역에서도 용수면은 장수를 상징하는 면으로 여겨져 생일·혼례 등 의례 음식으로 사용되었다. 조산 지역지에는 “龍鬚麵(용수면)은 장수를 상징하며 연회에 오르는 고급 면”이라는 기록이 남아 있다.
용수면을 만드는 과정은 일종의 ‘공예’에 가깝다. 중국 CCTV 다큐멘터리 《舌尖上的中國(혀 끝으로 만나는 중국)》 에서도 “技藝(기예)의 면”으로 소개되었다. 용수면은 단순한 수제면이 아니라 천 년의 손기술이 실처럼 이어진 백색의 유산이다.


동아시아 3국의 가늘고 긴 소면의 역사는 지금도 이어지고 있다.
한 길은 빠르고 대량생산되는 산업으로, 또 다른 길은 사람의 손을 거치고 긴 시간 힘든 노동의 과정을 통해 명품으로 만들어지고 있다.
이는 동아시아 3국의 공통점이다.
그리고, 세 나라 모두의 또다른 공통점은 소면을 만드는 장인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수연소면을 선물 받거나 그 소면을 맛있는 한 끼 식사로 누릴 때 이 유산이 사라지지 않고 누군가 소중히 지켜 줄 것을 기도해 본다.
자료 출처
Science On 회원논단 논문 ‘한국의 국수 산업 발달사’
단국대학교 식품영양학과 김성곤
nihontenobe.com
ibonoito.or.jp
japan.travel

글 박현진
누들플래닛 편집인
IMC 전문 에이전시 ‘더피알’의 PR본부장이자 웹진 <누들플래닛> 편집인을 역임하고 있는 박현진은 레오버넷, 웰컴퍼블리시스, 화이트 커뮤니케이션즈, 코래드 Ogilvy & Mather에서 근무하며 20년 동안 100개 이상의 브랜드를 경험했다. 켈로그, 맥도날드, CJ제일제당, 기린프로즌나마, 하이트진로 등 국내외 다수 식품 기업의 광고 커뮤니케이션을 진행하였으며, (주)한솔에서 브랜드 담당자로 근무한 경력과 F&B 브랜드의 마케팅을 담당한 이력이 있다.







